공동체의 사가 · 한국어판 · N. 10
모든 것이 부서진 날
그날이 어느 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첫 번째 진실이다. 우리는 계획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있다. 체계와 전략과 보호막과 비축을 세울 수 있다. 경험이 면역의 한 형태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 부서지는 날은 언제나 온다. 때로는 한 사람이다. 때로는 하나의 환상. 때로는 하나의 계획. 때로는 몸. 때로는 하나의 관계. 때로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여기던 하나의 확신. 그날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언제나, 우리가 그날을 나중에야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일어날 때는 하나의 사건처럼 보인다. 나중에 우리는 그것이 국경이었음을 이해한다. 나 역시 나의 그날이 있었다. 아마 하나보다 많았을 것이다. 삶은 균열을 나누어주는 데 후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묻지 않는다. 직책을 묻지 않는다. 은행 잔고를 묻지 않는다. 이력서를 묻지 않는다. 그저 문을 두드릴 뿐이다. 정확한 감각 하나를 기억한다. 고통이 아니다. 두려움이 아니다. 놀라움. 한 삶의 풍경이 얼마나 빨리 바뀔 수 있는지 발견한 놀라움. 어느 날은 모든 것이 안정되어 보인다. 다음 날 안정은 기억이 된다. 그리고 너는 영원하다고 여기던 무언가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존재의 커다란 환상 하나를 발견하는 것은 그 순간이다. 우리는 잃은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흔히 우리는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상실은 사건 하나를 부순다.
환멸은 확신 하나를 부순다. 그리고 확신은 뿌리가 깊다. 무언가 정말로 부서지면, 첫 충동은 고치는 것이다. 인간적인 일이다. 우리는 곧바로 해결책을 찾는다. 설명을. 처방을. 책임질 사람을. 어떤 것들은 원래 형태로 다시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나도 그 전투를 치렀다. 모두가 그렇듯. 명백함에 맞선 전투. 명백함은 잔혹하기 때문이다. 협상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그뿐이다. 삶이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너를 변모 속으로 밀어 넣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네가 누구인지 발견하는 것은 거기서다. 모든 것이 돌아갈 때가 아니다. 무언가 돌아가기를 멈출 때다. 받을 때가 아니다. 잃을 때다. 세울 때가 아니다. 세운 것의 일부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볼 때다. 많은 사람들이 회복력을 영웅적인 자질로 상상한다. 나는 언제나 다르게 보았다. 회복력은 힘이 아니다. 적응이다. 힘은 말한다. “버티겠다.” 회복력은 말한다. “변모하겠다.” 그리고 그 차이는 거대하다. 어떤 폭풍은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나보다 훨씬 많이 잃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계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들. 가족. 건강. 안전. 애정. 그들을 바라보며 근본적인 가르침 하나를 배웠다. 고통은 반드시 사람을 부수지는 않는다. 흔히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지녔던 상을 부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다른 부서짐이다. 고통이 오면, 우리를 가면 없이 나서도록 강제한다. 직함 없이. 역할 없이. 보호막 없이. 오직 우리. 그리고 남는 것. 처음에는 이 드러남이 두렵다. 그러다 진실의 한 형태가 된다. 마침내 우리가 연기하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중요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이 동시에 흔들리는 듯하던 내 삶의 한 시기를 기억한다. 단 하나의 위기가 아니었다. 수렴이었다. 마치 운명이 모든 질문을 같은 순간에 내놓기로 결정한 것처럼. 어려운 계절이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시절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무엇이 실재였는지 내게 보여주었다. 집이 불타면, 부서지는 것만 잃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불을 견디는지도 발견한다. 위기에는 이런 기능이 있다. 본질적인 것과 군더더기를 갈라놓는다. 거의 잔인할 만큼의 정밀함으로. 중심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무의미해진다. 겉보기에 변두리 같던 사람들이 없어서는 안 될 이들이 된다. 거대해 보이던 야망들이 갑자기 의미를 잃는다. 작은 것들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띤다. 포옹 하나. 전화 한 통. 존재 하나. 진실한 말 한마디. 삶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옳다. 우리가 정말로 배우는 것의 많은 부분이 그 균열들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연속에서가 아니다. 단절에서. 뒤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부서진 날이 모든 것이 끝난 날은 아니었음을 알아차린다.
다른 무언가가 시작된 날이었다. 그러나 이 진실을 곧바로 깨닫지는 못했다. 나중에 깨달았다. 아주 나중에. 잔해가 이미 주춧돌이 되기 시작했을 때. 상처가 이미 흉터가 되기 시작했을 때. 두려움이 이해에게 자리를 내주었을 때. 시간이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이 하나 존재한다. 언젠가는.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다. 돈에 관한 것이 아니다. 명망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질문은 훨씬 더 단순하다. “무언가 부서질 때 너는 무엇을 하는가?” 어떤 이들은 멈춘다. 어떤 이들은 숨는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탓한다. 어떤 이들은 배운다. 나는 배우려고 애썼다. 언제나 잘하지는 못했다. 언제나 빠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이해할 만큼은 배웠다. 부서짐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전 환상의 끝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무언가 부서질 때마다, 무언가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격. 관계들. 진실. 본질적인 것. 그리고 먼지가 마침내 가라앉을 때, 소음이 공기를 채우기를 멈출 때, 고통이 가장 사나운 목소리를 잃을 때, 조용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이것이 아니다. “왜 일어났는가?” 이것이다. “그 후 나는 누가 되었는가?” 다음 장이 태어나는 것은 그 질문에서다. 모든 것이 부서진 날은 무언가를 부수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 버티고 서 있게 될지 발견하도록 나를 강제했다.
Ferdinando Frega
Gillette Man ⚔️